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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과 영화

허무주의와 다정함_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쓰(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by IPARI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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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AAO(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와의 만남

이 영화를 처음 광고에서 접하고는 '저게 뭐람'이 나의 반응이었다. 할리우드식 동양 무술을 허접하게 표현한 액션 영화가 또 나왔구나 싶었다. 주인공은 익숙한 양자경이긴 했어도 요즘 할리우드에서 소모되고 있는 동양(이라 쓰고 중국이라 읽는다)의 이미지에 소모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 소문은 나에게도 들려왔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이동진 평론가가 5점을 준 영화라느니, B급 영화 인척 하는 S급 영화라느니, 올해가 다 가진 않았지만 올해의 영화라느니 찬사가 이어지길래 너무 궁금해져서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곤 나는 엔딩크레딧까지 다 보고 나올 만큼 만족스러웠다.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미쳤다고 할 만큼 뛰어난 연출, 코믹함, 가족애 그리고 사랑까지. 잘 만든 코믹액션(가족영화라기엔 좀 그런 장면들이 포함돼있다)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 이상이다.

 

지금부터는 주관적인 스포일러 리뷰

이 영화는 담고 있는게 아주 많다. 다양한 상징, 레퍼런스, 패러디, B급 감성, 웃음과 감동 등 그래서 얘기할 거리도 많으나 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전문 리뷰어도 아니니 내가 처음 관람하면서 느꼈던 부분(나는 두 번 관람했다)에 대해서 주관적 해석과 함께 얘기해보려고 한다. 

 

허무주의

한 때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댄 적이 있다. 성인이 되고 심지어 직장을 다닐때(그때가 육춘기정도 되는 거 같다)였는데 우주에 참 관심이 많았다. 드넓은 우주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우주의 찬란하고도 깊은 어둠의 크기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다 보니 내가 너무 작아졌고 그 가늠할 수도 없이 작아진 나를 느끼자 곧 허무주의가 찾아왔다. 그저 별의 먼지들이 어쩌다 만들어낸 수많은 생명체 중에 어쩌다 뇌가 커져 생각이 많아진 개체 중 하나. 이 개체는 다른 우주의 모든 것처럼 다시 먼지가 될 것이다. 나는 기껏해야 100년 정도, 우주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을 살다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나의 모든 가족도, 나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도, 인류도, 인류가 기록한 모든 것도, 지구도, 태양도, 이 은하계도 언젠가 사라진다. 

 

EEAAO 주인공의 딸이자 빌런인 조이가 모든 다중우주를 겪고는 깨닫고 자주 하는 말이 '통계적 필연성'이다. 그녀가 모든곳의 모든 것을 다 겪어봤더니 결국 필연적으로 사라진다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을 "Nothing matters"로 만들고 허무주의로 응축된 베이글과 함께 사라지고자 하는 이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스터_from "DANIELS" 트위터

영화가 보여주는 다중우주에는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포스터에 있는 돌들이다. 주인공 에블린 또한 다중우주를 경험하고 베이글(공허, 허무, 無)을 깨닫고는 "Just be a rock'이 된다. 광활한 대지에 덩그러니 있는 돌. 허무주의에 빠져봤던 사람들은 이 장면이 심금을 울릴 것이다. 

"DANIELS" 트위터에서 다른 버젼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규칙 따윈 없어"

내가 허무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허무주의 덕분이다. 바로 '낙관적 허무주의(Optimistic Nihilism)'이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면 내가 그 의미를 만드는 것. 결국 찰나의 순간이라지만 그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나'고, 우주에 의미, 목적, 규칙 따위가 없다면 내가 그것을 정하면 되는 것. 그게 낙관적 허무주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낙관적 허무주의 : https://youtu.be/MBRqu0YOH14)

낙관적 허무주의를 잘 설명하고 있는 영상

허무주의를 깨달은 돌들 중 하나(에블린 돌)가 눈알을 붙이고 나타난다. 그리고 돌이 움직인다. 조이 돌이 당황하며 말한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당신은 돌이니 움직일 수 없다고. 에블린 돌이 말한다. "규칙 따윈 없어" 다른 주제도 많지만 이 부분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엇으로 우주를 채울 것인가

나는 살아있는 주체로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으로 내 삶의 의미, 목적, 원칙을 정하면 그만이다. 그 느낌 또한 이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말해준다.  

 

첫 번째는 주인공이자 빌런 '조이(Joy)'.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 없는, 무(無)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 악당의 이름이 역설적으로 Joy(기쁨, 즐거움)다. 영화는 코믹 요소가 많아 관객을 즐거움으로 채워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의 장치로 '인형 눈알'을 사용한다. 아무 감정 없는 물체에 눈알을 붙임으로써 즐거움을 선사하고 인생의 기쁨을 깨달은 주인공은 혜안으로 제3의 눈을 이마에 붙이기도 한다. 

 

두 번째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 돌이 되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가만히 있는 내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 나의 선택에 의해 나는 그 무엇이든 되어 존재할 수 있음을 다중우주를 통해 보여준다.

 

세 번째는 다정함 그리고 사랑. 거창한 모험, 부와 돈, 외모와 같은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따뜻하다고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하는 것, 더 사랑하는 것이다. 소박하지만 소중한 이들을 다정하게 대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마지막까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인 것 같다. 

 

내 우주는 내가 정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우주를 느끼고 허무함에 빠졌을 때 그녀는 우주를 느끼곤 본인이 가진 문제(trouble)가 아무것도 아님을 느꼈다고 했다. 칼 세이건도 '창백한 푸른 점'을 보고는 비슷한 말을 했다는 걸 알까? 

 

우주의 작은 푸른 점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며 무언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할 일은 많다. 여행을 하며 더 많은 곳을 보고 느껴야 되고, 스카이 다이빙도 해봐야 되고, 게임도 해야되고, 날씨 좋을 때 소풍도 가야되고, 노을도 봐야되고, 다양한 커피 향도 느껴야 되고, 공부할 것도 많고, 맛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들도 먹어야 되고, 봐야 할 영화도 책도 너무 많다. 이 모든 게 무슨 의미냐고? 그건 내가 정하면 된다. 

 

나는 우주를 느끼는 주체로서 온전히 자유로우며 오만할 필요도, 허무함에 빠질 필요도 없음을 알고

그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험하고 느끼고 사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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